비대한 자의식의 바다에서 <우리 집 아재> - WIIZM WEBTOON (WEBTOON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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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재

비대한 자의식의 바다에서 <우리 집 아재>


우리 집 아재

official icon 비대한 자의식의 바다에서 <우리 집 아재>

비대한 자의식의 바다에서

<우리 집 아재>, 꼬까솜, 저스툰, 연재중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지났다. 명절은 한국에서 남성의 자의식이 커지기 가장 좋은 시기다. 어릴 땐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던 명절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가관이었다. 남자 어른들은 TV 앞에 모여 정장 바지에 셔츠 차림으로 소파에 반쯤 누워서 앉아 있고, 작은삼촌들은 그 아래 바닥에 앉아 있었다. 여자 어른들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에서 재료를 준비하고, 여자 사촌들은 그 아래에 앉아서 준비한 재료들에 계란물을 묻히고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 팬에 전을 부쳤다. 일을 도우려고 하자 할머니는 “남자애가 그런거 하는거 아니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거실에서 ‘배고픈데~’하는 말이 들리고, 상이 준비되고, 남자들만 앉은 밥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자란 평범한 한국의 남자였다.




몇 년 전, 큰삼촌이 돌아가시고 모인 장례식장에서 일을 도와드렸더니 숙모는 내게 “힘센 남자애가 일을 도와주니 금방이다”라고 하셨다. 내가 한건 쓰레기를 나르고, 상을 닦고, 여러명 온 테이블에 추가로 작은 상을 놔 드리는 것 정도였다. 왠지 뿌듯했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그 해 추석, 음식 하는 것을 돕고 상을 정리하는걸 함께 한 것 만으로도 나는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한국에서 남자들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수도 없이 많다. 기대가 너무 낮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그 이유를 명쾌하게 보여주는 만화가 있다. 바로 꼬까솜 작가의 <우리집 아재>다.




작품에 등장하는 김길수씨는 한국의 평범한 가장이다. 두 딸과 막내 아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다.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면 김길수씨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이 더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김길수씨는 앞서 말했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보다, 자신이 보는 좋은 사람에 더 민감한 사람이다. 부인이 집안일을 하다가 안방 화장실 청소를 부탁하면 그걸 실제로 하는 자신 보다 ‘화목한 가족을 위해 해야할 28가지’ 같은 책을 읽는 “교양있는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두 딸이 밤늦게 돌아다닌다고 걱정하며 여성이 밤에 돌아다니기 힘든 세태를 비판하기보다 딸들에게 “빨리 다니라”고 호통을 치며 딸들을 걱정하는 “자상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김길수씨의 자기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건 몰라도 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그게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청소하고, 아내의 흰머리를 보면 왜 흰머리가 났는지 염색을 해주며 물어보고, 집에 동료들을 데려오기 전에 5시에 출근하는 아내를 생각이라도 하고, 딸들에게 늦게 다니지 말라고 호통치기 전에 차라리 호신용품이라도 선물하는 정도의 고민이 없는 이유는, 그게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길수씨에겐 집이 더러우면 먼저 나서서 청소를 하고, 배고프면 밥을 차려먹고, 설거지를 하고, 가족의 일을 함께 하는 일은 “나의 일”이 아닌 셈이다. 마치 명절이나 가족 행사에서 일을 ‘도와준’ 다음 뿌듯함을 느꼈던 지난날의 나처럼.




<우리 집 아재>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얼마나 편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아내의 휴대폰이 고장나자 “돈 없는데 휴대폰을 고장내면 어떡하냐”며 아내에게 화를 내고, ‘당신 술만 줄여도…’라는 말에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설거지를 부탁한 아내가 외출했다 돌아올 때까지 해놓지 않았다며 핀잔을 주자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가며 씻는 등, ‘너의 일을 내가 하고 있다’, 또는 ‘내가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작품에선 김길수씨뿐 아니라 딸들의 모습을 통해 동성애 커플의 고충, 여성에게 쏟아지는 외모품평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에게 후한 평가를 내리는 세태가 낳은 비대한 자의식의 전시와 동시에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무언의 압력이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명절 거실에서, 어느날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식당에서, 또는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아재’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만약 김길수씨를 비롯한 남성의 비대한 자의식의 바다에서 힘겹게 풍랑과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진다면, 본인의 자의식이 너무 거대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는 시선에서 ‘나’를 배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면, 금방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주변에 넘실대는 김길수씨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의식의 바다를 말이다.



한줄평) 생활툰으로 느껴질만큼 현실적인 '아재'의 자의식 탐방.


장점

  • 비대해진 남성의 자의식을 날것 그대로 탐구할수 있다
  • 응징-사이다로 이어지는 편한 이야기 구조가 등장하지 않는다
단점

  • 현실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웹툰에서까지 봐야 하는 고통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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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봄
  • 작성자 : 푸른봄
  • 작성일 : 2018/09/30 - 01:56
  • 소개글
만화를 좋아합니다.
때문에 웹투니스타를 시작했고, 어쩌다보니 평론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화 평론과 만화계 전반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의 : webtoonista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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