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리뷰부문] 썸머브리즈: 내 삶에 산들거리는 여름 바람이 필요해.
출처:네이버 웹툰. 썸머브리즈.
도시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주인공 윤호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생계로 바쁜 부모님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볼 여유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짐과 무게도 상당하다.
바쁜 일상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가지 못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사실 그들의 잦은 언쟁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윤호는 아주 오랜만에 할머니가 계신 시골마을로 향한다.
어릴 적 모습은 어땠는지 잊을만큼 무표정해진 윤호의 얼굴 표정은 그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고되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푸른 자연을 보아도 감흥 없이 내린 마을 버스에서, 자신을 기억하며 반갑게, 해맑게 인사하며 다가오는 친척들이 낯설다. 조금 교양없어 보이게 씩씩 거리며 자신들의 감정을 얼굴에 그대로 담는 시골의 친척은 도시가 익숙한 윤호를 털털 거리는 경운기에 태워 어릴 적 있었던 온갖 이야기를 다 해댄다.
풀벌레 소리, 덜컹이는 경운기 바퀴 소리, 기억나지 않는 예전 자신의 모습을 떠들어대는 친척 아주머니의 말소리를 배경 삼아 잠깐 여독에 졸지만 시골길은 금세 도착지에 도달한다. 기억 속에 희미해져 어떤 색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할머니댁의 대문을 어루만져 보는 윤호는 치매로 더 많은 것을 잊어버린 할머니를 마주한다. 할머니의 투박한 치매 투정도, 집에 자유분방하게 기르는 닭들과 염소도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윤호는 어른들 앞에서 어른스러운 투의 인사를 건네며 자신이 지내오던 곳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는 듯 시골길 산책을 나선다.
7살 이후 온 적이 없는 이 길이 익숙한 듯 낯설지만 어느새 뚱뚱한 고양이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하루만 묵고 다시 돌아가려고 했던 윤호는 할머니의 치매 증세 때문에 원치 않게 며칠을 더 머무르게 되면서 다시 시골길을 산책을 나간다. 익숙치 않은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가 넘어지며 어릴 적 잠시 알고 지냈던 소년과 청년 사이의 동생을 만나지만 알아보지는 못한다. 우연한 만남에도 그 친구는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걷는데,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든다. 소년이었던 그, 동희는 당돌했던 어릴 적 윤호를 짝사랑하는 순정파였고, 긴 시간이 흘러 돌아온 윤호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말이 없는 동희와는 달리, 그의 여동생 유진은 도시에서 온 언니, 윤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호기심과 관심을 보인다. 작은 그녀를 보면서 자신이 시골에 머물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윤호는 조금씩 시골집의 작은 동물들과 시골마을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그리고 떠오른 동희에 대한 기억으로 살며시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윤호는 치매로 아무것도 모르고 뜰에만 앉아있는 할머니를 친절하게 돌보는 동희를 슬쩍 바라본다.
윤호는 어린 윤호가 할머니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 꿈을 꾼다. 시골에 며칠 머무르면서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잔잔하고 평화롭고 개구지다. 누가 비난하지도 않고 평가하지도 않고 터놓고 웃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며칠새 가까워진 기분이 드는 할머니의 곁에 가만히 앉아서 여름의 산들 바람을 즐겨본다. 할머니가 기적처럼 정신이 조금 드셔서 온 가족들이 모이고 형과 감정적 골이 깊었던 윤호의 아빠는 시골로 내려와 가족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게 된다. 사이 좋던 형제가 수십 년간 생을 이어가면서 겪어야하는 고통들이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관계가 개선되길 바라는 가족들이 지지해주고, 원래의 감정과 마음들을 서로 비추어낼 때 윤호의 아빠와 큰아빠의 거리는 점점 좁아진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잠시 시골에 내려온 선물 같은 윤호 덕분에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지고, 가족들은 다시 모이게 되고, 사이가 좋지 않던 형제 관계가 화해를 이룬다. 어릴 적 윤호를 짝사랑하던 동희를 통해 윤호는 자신이 잊고 있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며 다시 힘차게 살아갈 희망을 선물 받는다. 커다란 자극제가 아니라도 우리의 삶에는 시골의 여름 산들바람으로 잠시 환기를 시켜줄 필요가 있다. 매우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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