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A: The Painful 리뷰
홍원표
시드 마이어는 게임을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 이라고 정의했다. 과연 문명이라는 턴 제 플레이 방식의 수작 게임을 만든 사람이 할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국은 ‘불쾌한’결과로 도달되는 게임이 있다. 바로 2014년 스팀에서 발매한 ‘LISA: The Painful’이다. LISA: The Painful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 게임으로, 모종의 이유로 여자가 사라진 세계에 유일한 딸인 버디(정확히는 주운 여자아이)를 납치당한 아빠, 브래드의 이야기이다. 플레이어는 유일한 여자인 딸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많은 선택지를 부여받는다. 리사가 좋은 게임인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게임은 엔딩까지 플레이어를 고민하게 한다.
첫 번째 좋은 예로 게임의 큰 맥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의 마약과도 같은 ‘조이’를 들 수 있다. 이 조이를 섭취하였을 경우 캐릭터의 파워와 만족감이 올라가지만, 금세 금단 증상을 보이게 된다. 금단 증상을 보이는 주인공 브래드나 동료들은 그 성능이 조이를 섭취하기 전 보다 훨씬 떨어지며, 다시 조이를 섭취하기 전 까지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심지어 전투를 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조이와 관련된 선택은 비단 성능의 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이로 인해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된 수없이 많은 악당들, 조이에 미쳐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조이가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을 알린다. 이는 모두 복선으로, 이 조이를 섭취해오며 플레이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게임의 엔딩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 게임이 좋은 게임인 두 번째 이유로는 난이도/레벨링 시스템의 치밀한 설계가 있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레벨 25 정도에 모든 스킬을 다 배운다. 때문에 세 명밖에 동료를 데리고 다니지 못한다는 것은 자칫 세 명정도 괜찮은 동료들만 레벨링을 하고 그들로만 플레이하도록 해 게임을 질리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제작자는 게임에 ‘죽음’의 시스템을 넣었다. 이 죽음은 주인공의 게임 오버와 같은 것으로, 동료들이 말 그대로 죽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선택지로 동료의 목숨을 위협받거나, 러시안 룰렛에서 동료를 잃거나, 심지어 노숙 중에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 때문에 게임은 다양한 동료를 키우도록 유도한다.
세 번째 이유로는 캐릭터들의 개성을 들 수 있다. 30명을 넘는 동료들의 모든 대사와 직업, 스킬이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엔딩 시의 대사까지 모두 다르게 설정되어있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자신이 마지막에 선택한(함께한) 동료들의 엔딩 대사들을 듣게 됨으로서 감정이 고조되고 감동하게 된다.
위 세 가지의 이유들은 리사라는 게임을 문학적으로 만든다. 리사는 스토리의 갈등과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또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은(메인 스토리들을 제하면) 얼마 없지만, 플레이어가 이야기를 듣게끔 게임이 유도한다. 이런 유도가 잘 되어있는 게임들을, 우리는 레벨링이 잘 되어있다고 말한다. 게임들의 흔한 한계인 폭력성이나 성 차별적인 면모들이 굉장히 짙지만 리사는 그에 따른 설득력과 근거들을 가진 게임이다. 때문에 불쾌할 뿐, 불편하지 않다. 불쾌하다는 것은 세계관과 주인공의 과거, 닥친 현실 등에서 오는 일종의 소스일 뿐,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그 괴리감 덕분에 혼동을 가져올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한계들이 있다.
첫 번째로, 게임의 스토리 의존도가 강하다.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이야기들이 없지만 게임이 이를 듣게끔 유도한다는 말은, 반대로 플레이어가 억지를 부리거나, 굉장히 둔한 타입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캐릭터들의 대사, 스토리성이 굉장히 짙은 게임이다보니 이를 그냥 넘어갔을 때엔 재미가 반감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SRPG임을 감안하더라도 액션의 패턴이 단조롭다는 것이다. 리사의 경우 무술 계통 캐릭터들의 WASD를 통한 커맨드 액션이 적용되어있지만 그마저도 사용되는 기술들만 사용이 될 뿐, 액션에 패턴에 생긴다. 동료들이 사용하는 디버프들이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실제로는 술을 뿌리는 것과 그 위에 불 공격을 해 화상을 입히는 것 말고는 크게 사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리사에게서 삼국지 영걸전과 같은 다양한 플레이를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그런 동료들의 밸런스 때문에, 강제되지는 않지만 몇몇 동료들이 ‘좋은 캐릭터’로 느껴지게 되는데, 이는 다양함을 줄이게 되는 모습으로 안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동료들의 레벨 업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꾸준히 함께해온 몇 동료들은 레벨이 자연스럽게 오르지만, 뒤늦게 얻은 동료들이나 최종부 직전에 함께하게 되는 동료들의 경우 함께해온 동료들보다 한참 낮은 레벨로 합류하기 때문에 그들을 활용하기 위해선 레벨링을 위해 이른바 ‘사냥’이 강제된다. ‘갑작스러운 조우’ 방식의 싸움을 위해 액션을 반복하다보면, 뇌가 패턴을 더 이상 신선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생기는 지루함에 따라, 플레이어가 게임에 대해 질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때문에 레트로한 16비트의 그래픽과 시스템은 (여타 인디 게임들이 그렇듯) 플레이어들의 호불호를 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도드라지는 게임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토리나 주인공인 브래드의 장비 획득처, 서브 퀘스트로 유도되는 레벨링 시스템 등은 놀랍도록 치밀하고 완성도있다. 소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보상이 따라오는 시스템은 라프 코스터가 말한 재미의 요건을 충족하고, 그 속에서 등장하는 소소한 유쾌함들이나 충격적인 스토리들은 동일인이 말한 미적인 만족감의 조건을 충족한다.
스팀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평가는 “이 게임은 당신을 불쾌하게 만들기 때문에 훌륭하다.”라는 말이다. 사실이다. 이 게임은 당신에게 끊임없이 지저분한 정보들을 전달해 주는 게임이다. 그 정보들이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리사의 세계에 대하여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버리게 된다. 때문에 게임의 엔딩을 보고 나면 만족감보다는 찝찝함이 많이 들게 된다. 그 찝찝함은 너무 복잡한 세계를 알아버렸다는 것에서 오는 느낌일 것이다. 게임을 하나의 예술의 분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서사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로테스크와 경이성을 바탕으로 한 게임의 서사와 비쥬얼은 현대 영화나 문학에서 판단하는 환상성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서사 예술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 게임을 예술로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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