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리뷰부문] <집이 없어>, 집이 없더라도…




집이 없어201812월부터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와난 작가의 작품으로 고등학생들이 학교 부지의 건물에 모여 살게 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귀신이 나오는 폐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공포 장르로 분류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집이 없어라는 제목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소재인 귀신이 등장하는 것 자체도 재미를 주지만, 작품 내에서 귀신의 존재가 활용되는 방식 또한 독특하다. 집이 없어의 귀신들은 그 자체로 작품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소재가 아니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제목 그대로 집이 없는 청소년들이고, 귀신은 그들의 곁에 등장하되 사건의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이 집이 없어의 장르가 공포가 아닌 일상인 이유다.

작중에서 해준은 귀신을 볼 때마다 공포를 느끼지만, 23화에서 그것이 늘 자신을 지켜보던 미영이 누나귀신임을 알게 되자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 순간, 해준 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귀신을 보며 공포가 아니라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여느 공포 만화처럼 귀신이 단순히 공포감을 조성하는 존재로서만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더 이상 귀신이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장면에서조차 결국은 무섭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 집이 없어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일상공포와 같은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들이다.



(<집이 없어> 10화)


집이 없어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머무르는 건물은 온갖 부적들이 붙어 있고, 음침해 보이는 골동품이 잔뜩 쌓여 있는, 말 그대로 폐가인 공간이다. 해준, 은영, 주완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없거나 집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폐가에서 거주하는 것을 선택한다. 특히 해준과 은영은 폐가에서 귀신의 존재를 분명히 느낀 인물들인데, 귀신뿐만 아니라 사람의 잘린 손가락이 들어있는 단지까지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폐가를 떠나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분명하고 단순하다. 돌아갈 집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학교를 마치고서, 친구들과 헤어지고서, 모든 일과를 끝내고서 그들은 돌아간다. “사람은커녕 벌레와 거미줄만 가득한, 집 같지도 않은 그 곳(와난, <집이 없어>, 13화 인용. 이하 작가명 및 작품명 생략.)으로.

해준이 어머니와 함께 지냈던 거주지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더 이상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제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해준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실수에 대한 후회와 두려움뿐이다. 그런 공간을 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곳은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보다는 차라리 달아나고 싶은 지옥에 가깝다. 은영이 집을 나오게 된 자세한 계기는 아직 작품 내에서 등장하지 않았지만, 쉼터와 텐트를 전전해왔다는 묘사와 거기서 살면정신줄 놓을 것 같아서집은 커녕 그 동네에서 사는 것도 싫어, 나는(22화 인용.)이라는 대사를 통해 은영 또한 비슷한 처지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귀신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폐가에서의 일상은 공포에 가깝다. 매 에피소드마다 바뀌는 표지의 그림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 해준은 항상 슬픔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고, 은영에게는 다른 감정이 끼어들 수 없는 거대한 혼돈으로 뒤덮인 상태다. 이렇게 지독한 현실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운 상황의 연속인 작품에서 굳이 공포 장르의 대표적 요소인 귀신까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준의 어린 시절, 해준의 어머니는 해준에게 귀신들이 나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며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에이~ 해준아~ 네가 자꾸 없다고 하니까 얘들이 화났잖아~ 옆에 있는데 없는 것처럼 무시하면 해준이도 화나지

그러면 안돼~ , 어서 화해하고 친하게 지내자. 알았지

다들 나쁜 애들 아니야~ 외로워서 그래~ 외로워서(7화 인용)"



폐가에 머무르는 사람이 적을수록 귀신들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해진다. 은영이 매일 밤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에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지만, 건물에서 지내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수록 귀신의 등장이 빈번해진다. 이는 집이 없어에서 등장하는 귀신이 공포, 저주, 위협 등과 같은 거대한 악의라기보다는 고독 그 자체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폐가에서 귀신을 목격하는 인물 역시 그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외로운 사람들이다. 세 명의 아이들 중 해준과 은영만 귀신을 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외로워서 그렇다. 외로워서. 주완은 그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의 원인이 고독감이 아니므로 귀신을 목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귀신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처절한 외로움을 맛보는 사람, 명절과 휴일, 온갖 기념일마다 짜증이 나는 사람, 그래서 한 해가 지옥 같은 사람인 해준과 은영 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귀신의 존재를 목격하는 것이 무한한 고독에 대한 절망적 예고는 아니다. “아무도 날 안 믿어!!”, “가족이 없는 삶은 이렇게 되는 걸까?”, “나는 이제 혼자구나(각각 43, 56, 59화 인용.) 등과 같은 해준의 독백이 나올 때마다 곧바로 은영의 모습이 등장하는 연출은 은영만은 해준을 믿고, 해준의 가족이 되어줄 수 있고, 그러므로 해준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해준이 가장 먼저 호감을 느낀 인물인 주완이 아니라 해준을 가장 먼저 해쳤던 인물인 은영이 해준의 가족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폐가의 귀신을 볼 수 있는 사람들. 지옥과 같은 처절한 외로움을 아는 사람들. 그래서 같은 걸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동질감은 다정함의 원동력이 된다.

귀신은 나쁜 애들이 아니며 다만 외로워서 그럴 뿐이라는 어머니의 말은 작품 내에서 그저 무의미한 미신으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집이라는 공간의 물리적·심리적 안정을 잃은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고, 마침내 다정하게 맞게 될 미래에 대한 긍정이다. 귀신들이 집안의 물건을 마구 떨어뜨리며 분노와 슬픔을 표현하는 장면은 해준과 마찰을 일으킬 때 주변 사물을 집어던지던 은영의 모습과 비슷하다. 때때로 의중이 모호하고 불가해한 행동을 하는, 언제나 외로워하고 있는 인물인 은영과 함께 지내며 해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중에서 표현되지는 않았으나, 문득 어머니의 그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다들 나쁜 애들 아니야. 외로워서 그래. 외로워서. 그리고 이것이 은영을 폐가에 두고 홀로 신축 기숙사로 떠나가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집이 없어에서 귀신은 외로움을 타는 존재들이고,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존재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지독한 고독으로부터 야기되는 두려움을 보여주는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귀신은 그 외로움이 다정한 연대로 나아갈 가능성을 비추어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폐가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괴로워하고, 때때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진저리를 치고, 몸싸움으로 인해 상해까지 입히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이 모여있는 공간을 하나의 으로 만들어간다.

해준에게 집이란 단순히 거주가 가능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힘들고 지칠 때 빨리 오고 싶어(21화 인용)지는 곳이다. 그래서 그는 집 같지도 않은 그곳을 하루 종일 쓸고 닦는다. 가족이 집에 돌아왔을 때 편안하게 아무데나 앉고, 눕고, 뒹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준에게 청소란 그저 삶을 영위하기 위한 단순 노동의 반복이 아니라, 집을 집 같은 곳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은영이 해준을 위해 매일 아침 자신은 먹지도 않는 식사를 준비해주는 것 역시 그것이 은영이 집을 만들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확실한 마침표를 가지고 집이 없어.”라는 확정적 슬픔에 이르는 결론이 아니라, “집이 없더라도라는 말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끝없는 가능성의 미래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제목 그대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돌아갈 수 있는)집이 없다. 해준은 자신이 이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자신은 혼자일 것이라고, 그래서 너무나 두렵다고 말하지만해준의 미래가 절망적 예감이 실현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독자는 모두 알 수 있다. 집이 없는 자들은 어디로 가는가. 집이 없어에서 집이 없는 아이들은 집을 찾아 떠도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있는 곳을 집답게 만든다. 이것이 이 작품이 지닌 다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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