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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은 돌아오고 있는가 - 교보문고 만화 판매량 증가 뉴스에 비쳐 본 우리 만화 시장의 현재 진단 2부

에디터 이세인

'만화책'은 돌아오고 있는가 - 교보문고 만화 판매량 증가 뉴스에 비쳐 본 우리 만화 시장의 현재 진단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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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6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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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 NEWS

안녕하세요. 저는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입니다.

이 글은 시사저널 1440호에 실린 「만화책이 돌아왔다… 다시 부는 카툰 열풍 - 만화 원작 콘텐츠 인기 영향, 새로운 트렌드 만화 카페 등 즐기는 방법 다양해」라는 기사 작성을 위해 서면 인터뷰를 요청받아 작성한 내용입니다. 

해당 기사가 저만을 인터뷰한 내용이 아니었던지라 답변의 일부만 실려 있는지라, 기왕 적은 내용을 공개하였다가 웹툰인사이트에도 전재하게 됐습니다. 질문자인 시사저널의 김은샘 객원기자님의 양해를 구해 원 질문과 함께 공개합니다. 기사에 담긴 다른 분들의 견해도 함께 참고하여 읽어주십시오.

이 글의 내용은 모두 저의 생각이며, 웹툰인사이트의 편집 방향과는 논조가 다를 수 있습니다.

 


 

※ 편집주) 내용 상 2부로 나누어 등록하였습니다.

* '만화책'은 돌아오고 있는가 1부

* '만화책'은 돌아오고 있는가 2부​ 

 

7. 인기 만화나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대부분 일본이나 디즈니인데, 한국 만화는 이렇게 광범위하게 소비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저 콘텐츠 자체가 외국에 비해 부족한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고 일일이 설명하자면 너무나 길겠지만 한국에서 만화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에는 인구수와 저변이 너무 적고 좁습니다. 자생하기엔 좁은 시장이지요. 그렇다고 나라 바깥에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요. 일부의 성공으로 일반화하기엔 어렵고요. 그리고 미국과는 규모 면에서 대기가 어려워도, 일본과 비교하는 건 이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각자 중심이 되는 콘텐츠가 다를 뿐이라고요. 단적으로 한국은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실사 기반 영상물이 강세입니다. 일본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강세고 영화가 고인 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요.

한국의 만화와 일본의 영화 모두 그럴싸한 영광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한국 만화가 왜 일본만큼의 시장성이 없냐고 분통을 터트릴 필요까진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통일 이후라면 조금 달라질 순 있겠으나, 만화가 유년기의 거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였던 60~80년대와는 사회가 모든 면에서 변했습니다. 만화 말고도 보고 즐길 게 너무나 많고 인정하기 싫을 수 있어도 지금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왕좌는 K-POP도 아닌 게임이 쥐고 있지요. ‘만화여서 보던’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박제처럼 남은 지금, 그럼 지금 왜 만화를 봐야 하는가? 왜 만화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답은 지금 구해 가는 과정이지만, 이제 와서는 형태가 뭐든 별 상관 없어하는 소비자들과 ‘썸’타는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만화인 듯 만화 아닌 만화 같은 걸로요. 물론 그럼에도 업계인들은 자기 콘텐츠 안의 정체성을 지켜야겠지요. 그 거리 차이를 납득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 영화에도 영광의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곱 사무라이> 포스터

 

7-1. 만약 콘텐츠에 부족함이 있다면 평론가님께서 개인적으로 창작자들에게 바라는 점은 있으신가요?

시장 규모가 콘텐츠의 질을 담보합니다. 콘텐츠의 부족함이라기보다는 시장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규모가 커지면 해결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웹툰 플랫폼들이 성적을 내걸고 경제 연구소들이 웹툰 시장 규모를 재고 이번 교보문고 통계가 만화 잘 팔렸다 나오는 등의 상황은 성장을 위한 근거자료인 숫자가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뢰성 이전에 숫자 자체에 끌려가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창작자들은 한계선 끝에 서서 작품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콘텐츠가 부족함이 있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다매체화든 뭐든, 결국 ‘터지는’ 작품은 시대정신에 둔감하지도 않으면서 대중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놓치지 않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대중’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질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 속 ‘만화 독자’는 이미 더는 없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8. 일본 지브리 영화나 최근 <너의 이름은> 같은 경우는 한국에서도 인기를 많이 끌었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도 애니메이션 시장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만화는 애니메이션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술이 부족한건가요? 아니면 상업적으로 안 된다고 보기에 제작하지 않는 걸까요?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너의 이름은>은 애니메이션 관객층에게 인기를 끈 작품이 아닙니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잘 버무려 세대를 아우르는 문법과 감독이 지닌 적절한 화제성을 섞어낸 결과물이죠. 우리나라에서 모든 애니메이션이 이와 같기는 어렵고, 이런 게 나오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관객층만으로도 성공하는 것들이 다수 나올 수 있는 인적 인프라가 받쳐줘야 그 끝에 저런 작품이 터져주는 건데요. 우리는 그게 없죠. 마니아층 자체도 적었고, 방송국들이 이를 받쳐주지도 않았고, 작품들도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했고. 2D에서 청소년층 이상을 노린 작품이 나와서 흥행할 가능성이 사라진 시점에 초등학생용 3D, 아니면 육아용만 살아남게 됐죠. 가끔 청소년 이상층에게도 먹힐 법한 소재를 섞은 <바이클론즈> 같은 변종이 나오기도 하긴 하지만 일반적이진 않고요.

어린 애니메이션 시청자층이 성장하면서 그에 맞는 작품들이 나와주고 이게 어느 정도 성공한다는 숫자가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게 성공해도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이 좋아하던 그건 이미 아니겠지요. <안녕 자두야>나 <마음의 소리> 등 캐릭터성이 강한 작품들이 일부 애니메이션으로 나오고 있긴 합니다만 서사가 긴 작품의 성공 여부를 타진하기엔 아직 작품 수도 데이터도 부족합니다.


<너의 이름은.> 

 

9. 플랫폼 변화에도 일정한 마니아층을 항상 사로잡는 2D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수많은 ‘덕후’가 2D에 이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오타쿠라는 부류의 성립 자체가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과도 같은 가상 세계관이나 2차원적 표현에 좀 더 몰입하는 아들을 빼놓을 수 없기는 한데, 이들의 몰입 원인을 단순히 이야기하는 건 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소비/고도성장기/영상 문화의 폭발기에 달하는 사회 흐름을 모두 훑은 후 한국에서의 변조까지 건드려야 비로소 그나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일 테니까요. 세대론까지 가면 같은 정의로 설명하는 게 불가능한 부류가 나오고…… 이걸 너무 뭉뚱그려 한국에 대입하면 극단적으로는 적당히 욕하기 좋은 '안여돼 화성인'과 '일빠 방구석 폐인'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덕들이 유독 끌려 하는 2D만의 매력이 뭐냐 물으면 굉장히 조심스러운데요. 그럼에도 이렇게만 말하면 기자님께 답이 안 될 것 같네요. 굳이 사람 손으로 작화된 가상 세계와 그 세계의 주민(?)들에만 집중해 말하자면, 이들은 엄밀히 말해 극사실주의의 정 반대편에서 극단적으로 기호화한 시각 언어입니다. 오덕둘은 이를 뇌내에서 재조립해 실사 이상의 리얼리티로 받아들이는 과정과 그 해체-재해석 과정에서의 자기 개입(작가와도 별개로)에 즐거움을 누끼는 사람들이죠. 지금의 덕질이야 실사도 포괄하지만, 2D로만 좁히자면 오덕들은 저런 해석을 즐길 텍스트에 끌리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10. 한국 만화 역사를 보면 한국에서 만화는 좋은 인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70년대에는 만화 화형식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인식이 만화업계의 성장을 막아왔던 부분도 있었겠지요?

만화에 관한 인식은 그래서 오래도록 안 좋았죠. 이젠 그 인식 핑계만 대선 안 될 시점에 와 있지만, 5월만 되면 여전히 얻어맞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자기 검열을 하는 창작자들이 있고 여전히 만화 때문에 애들이 공부를 않고 사고력이 떨어지며 나쁜 것만 배운다는 사람들이 슬쩍슬쩍 대상만 바꿔 똑같은 말을 하곤 한단 게 이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은 악습인지를 보여줍니다. 만화는 이런 탄압 기조 속에서 오프라인 시장이 완전히 박살났단 말이지요. 물론 모든 원인이 탄압 때문만은 아닙니다만, 마우 큰 비중을 차지한 걸 부정해선 안 됩니다.

현재 웹툰 중심 시장은 활황세란 뒷면에 잡음이 상당히 큽니다. 왜곡된 구조 위에 비틀린 수익구조를 얹어 아술아슬한 기적을 덧대가며 성장해 왔고 이제 섣불리 되돌아갈 수도 없죠. 그나마도 지난 정권은 음란성 시비로 흔들려 했고요. 이들이 일군 모든 인식 구조가 성장은 물론 발전을 다방면으로 막아왔지요.


5월 17일부터 7월 9일까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2기획전시실 및 로비에서 전시되는 <만화 검열의 역사 전 - 빼앗긴 창작의 자유> 공식 포스터. 포스터에 등장하는 만화는 김성환 선생의 <고바우 영감> 1091회차로 1958년 1월 23일 동아일보 4면에 실린 연재분의 내용입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8012300209101001&officeId=00020)

 

11. 그렇다면 한국에서 앞으로 만화가 어떻게 성장해갈지 궁금합니다.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만화책 시장이 부활했다고 언론에서 나오는 것처럼 부활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굉장히 여러 각도로 볼 수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만화 출판 시장이 수입으로나마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건 나쁘지 않은 징조지만, 한국 만화의 성장이란 측면에서 보면 그 안을 채우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가를 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 측면에서 볼 때엔 어쨌든 한국 만화의 헤게모니를 쥔 웹툰의 역할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웹툰 시장은 한국 만화 시장(즉 ‘한국의 만화 출판 시장’의 동의어가 아닌)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 하나가 더해진 결과물이고, 이제 국내 작가들의 손으로 창작되는 만화의 절대 다수는 포털과 웹툰 플랫폼을 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웹툰은 나름대로 숫자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가받는 와중입니다. 하지만 성과 뒤에 최근 작가 간의 불공정 계약 이슈를 비롯해 허약한 일면이 잦아들긴 커녕 오히려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기도 하지요. 웹이라는 무주공산 같은 공간에서 돈을 만들어내고 출판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양적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 소요 비용 자체가 불균형하고 낮을 수밖에 없는데 이게 웹툰의 태생적 역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웹툰은 유료화를 일정 부분 성공시켰고 부분 유료화 모델 도입 등 초기와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습니다만, 그걸로 만족하기엔 작품 수와 작가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콘텐츠 질도 제어하고 담보하기 어려워지고요. 규모 싸움 중이니 줄이라고 할 순 없는데, 불균형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워지는 것도 옳지는 않지요. 이런 와중에 웹툰의 출판화는 굿즈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고요.

정리하자면, 한국 만화 출판 시장의 성장세는 반갑지만 그 안의 한국만화의 역할이 미미하며 이 안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키 플레이어가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만화 전문 출판사들보다는 웹툰의 역할이 크다, 하지만 웹툰이 여러 수익 모델 접목에도 불구하고 웹 환경의 한계를 벗어나지만은 못하고 있고 웹툰의 출판화는 웹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그리고 현재는 고착 상태에서 업계 내부의 불합리성을 토로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는 결국 ‘한국 만화’의 성장에는 악영향을 줄 것이다…입니다.

저는 웹툰이 한국 만화에서 새로운 시장을 더하는 결과를 만들며 헤게모니를 쥐었듯, 궁극적으로는 웹툰이 다시 웹 환경에 머무는 ‘웹툰 이용층’ 바깥의 넓은 대중 독자층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확장성을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웹 환경에 맞춘 경량형 이미지 조합에 디지털 기술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어느 쪽에서든 보편적으로 읽힘으로써 파괴력을 높이는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만화 출판 시장이 웹툰의 대체제나 보완재가 아니라 웹툰 확장의 대상일 수 있어야 비로소 ‘한국의 만화 출판 시장’만이 아니라 ‘한국만화’의 성장을 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만화여서 보는 충성도 높은 독자층을 상정하지 않는 발상이 중요하리라 봅니다.

전 웹툰만의 고도 성장에는 부정적입니다. 만화는 게임이 아니고 게임의 위치에 만화가 다시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발전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지만, 때를 놓치면 그냥 거기서 멈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형식 자체가 사라지진 않겠지요. 스포츠로서는 인기가 하락이지만 모든 이종격투기의 기초이자 다이어트 스포츠로 변용되며 유지 중인 복싱과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 위치에만 머무르지 않길 바랄 따름이지요.


물론 가끔 예외는 있습니다. 내용과는 별개로 흥행을 하는 경우는 있죠. 저 포스터 속 경기처럼.

하지만 그게 전체의 평균치에 부합하거나 견인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11-1. 업계 성장에 문제가 있다면, 만화는 돈 주고 보는 것보다는 대여나 무료로 본다는 인식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평론가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이미 오래된 일이지요. 만화책을 소비하지 않아 만화 시장이 무너진다는 주장과 대여가 무엇이 문제냐는 주장이 부딪친 바 있습니다. 이 논쟁이 무의미할 만큼 2003~2006년 이후의 한국 만화계는 체질 자체가 바뀌었지만, 이번엔 웹툰 캡쳐라는 형태로 다시 돌아왔지요. 형태가 바뀌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선 자체는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만화는 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인식 말입니다.

최근엔 많이 나아졌습니다만 웹툰 유료화 초창기에 첫 타자 격이었던 주호민 작가가 받았던 인신공격을 떠올리면 보는 입장에서도 치가 떨릴 정도입니다. 지금도 마루마루와 같은 만화 공유 사이트를 비롯해 만화 콘텐츠의 불법 유통은 만화 시장에 악재로 작용합니다. 일본 작가가 한국에서 이런 사이트로 만화를 공유하는 사례를 들먹일 때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습니다. 이러한 인식 구조는 계속해서 깨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대중 인식 개선은 단속만으로 하기보다는 불법보다 합법이 편하단 사실을 주지시키는 쪽을 함께 해 나가야 합니다. 쉬운 결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것에 업계 자체의 방향 설정이 함께 따라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서 11에 해당하는 답을 적은 겁니다. 확장 없이 성장 없습니다. 대중 수준이 높아도 이끌어가야 하는 자들의 방향이 엉망이면 소용이 없음을 우리는 지난 9년간 국가 단위로 잘 체험했잖습니까?


<마법선생 네기마!> <U.Q.HOLDER!> 등을 그린 만화가 아카마츠 켄의 2017년 5월 5일자 트윗. (https://twitter.com/KenAkamatsu/status/860275532075630592) "잡지 발매 4일 전이지만, 벌써 연재 최신화의 해적판이 올라왔네요. 게다가 중국어→영어→한국어 등으로 번역. 이걸 스켄레이션(스캔&트랜슬레이션의 줄임말)라 부릅니다. 정식 번역판은 발매일 전에는 공개하지 않으니, 무료 해적판은 절대로 이길수 없는 겁니다. 핫핫. 머잖아 블로그에서 해설하겠습니다" 해당 장면은 마루마루에 올라온 「U.Q.HOLDER」의 한국어 해적 번역판. 굉장히 망신스러운 풍경입니다.

 

11-2. 또 만화를 즐기는 ‘덕후’ 등이 인식이 좋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일본과 큰 차이이기도 하구요. 덕후 관련 책을 쓰신 만큼 이에 할 말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어떤 분야에 대한 덕후가 부족하다는 것에 공감하시나요?

글쎄요, 오덕 집단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잉여 시간과 자본 자체가 부족하지 사람들의 덕심은 여건만 되면 얼마든지 폭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두 정부가 평화 덕질을 불가능하게 해 왔기 때문에요. 오덕질은 잉여 시간과 잉여 자본의 극단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사실 일본에서도 오타쿠를 향한 인식이 아주 좋은 건 아닌데 사회 현상의 어두운 점을 편리하게 해석하기 위한 방편인 경향이 있어요. 한국에서만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오타쿠 계열을 향한 여러 비판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문화가 사회의 보편적 평균보다 조금 더 나간 지점의 경계선 바깥에서 전에 없던 무언가를 끌고 들어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요. 무조건 비난하거나 역으로 무조건 과대 포장하려 들기보다는 이들의 역할과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성자 서찬휘는 1998년 이후 지면과 형식을 가리지 않고 만화 이야기를 해온 만화 칼럼니스트. 자생한 한국산 2세대 오덕으로 한국 오덕 문화의 흐름과 성격을 역사라는 맥락 안에서 꾸준히 탐색하고 정리해왔습니다. 만화, 애니, 성우, 애니송, 라이트노블 등을 덕질하다 현재는 만화를 중심으로 정착 중. 만화 정보 웹진 '만화인' 운영을 비롯해 대학 강의, 인터뷰, 팟캐스트 진행, 전시 기획, 세미나 기획 및 진행, 캘리그래피 등 만화와 연관성 있는 일들에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 키워드 오덕학 소개페이지 바로가기 ]

 

* '만화책'은 돌아오고 있는가 1부

* '만화책'은 돌아오고 있는가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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