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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탕 1화] 성공적인 빙의 생활을 위한 현생 활동 제안서

외부필진 조경숙

[그로탕 1화] 성공적인 빙의 생활을 위한 현생 활동 제안서

외부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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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 28일
category
웹툰 |


 


"로맨스 판타지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 비평가가 로판에 고료를 탕진한 사연은...

 

흔히 로맨스 판타지라고 하면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과 반짝거리고 화려한 그림체가 주요 특징으로 꼽히곤 합니다. 여타 장르보다 클리셰를 철저하게 따르는 등 장르적 문법이 확고하고, 스토리보다 작화의 비중이 더 큰 로맨스 판타지. 

이런 로맨스 판타지도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로판을 즐기고 사랑하는 3명의 여성 평론가들이 모였습니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최윤주 만화평론가, 홍난지 교수 세 분이서 교대로 웹툰인사이트에 월 1회 칼럼을 연재하고 팟캐스트를 진행합니다. 모아온 고료를 캐시와 쿠키로 탕진해 온 이들은 눈에 띄었던 로판 작품을 소개하기도 하고, '로판'이란 장르를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분석하기도 할 것입니다.로판에서 캐릭터의 외모와 그 캐릭터의 성격의 상관관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비평이지만 너무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게, 하지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글들을 만나보세요.


 

가. 제안 배경

 로맨스 판타지 세계로 빙의하는 현대 여성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빙의를 예정하거나 희망하는 이 역시 늘고 있습니다. 답답한 현대사회를 벗어나 소설 같은 이세계(異世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빙의는 매력적이지만, 빙의 이후의 삶이 언제나 장밋빛인 것만은 아닙니다. 언제 빙의할지, 어떤 계급으로 살아가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빙의는 불확실성이 다분한 도박과도 같습니다. 간혹 주요 캐릭터와 사건 전개를 이미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빙의되기도 하지만, 미래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고립무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전개를 숙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을 통해 빙의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빙의자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플랫폼(카카오페이지,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을 통해 다양한 사례가 보고된 바, 현생에서도 빙의 이후의 삶을 대비할 수 있는 방안들을 발견하였기에 아래와 같이 빙의자를 위한 현생 활동을 제안드립니다.

 

나. 제안 내용

 새로운 세계로 빙의될 때 빙의자는 어떤 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례를 통해 빙의 이후에도 빙의자에게 여전히 귀속되는 요소를 발견했습니다(단, 예외 사례가 있을 수 있음). 첫 번째는 지식, 두 번째는 경험, 세 번째는 반사신경입니다. 각각의 요소를 상술하며 이에 기반한 현생 활동을 제안하려 합니다.

 

1) 지식

현대사회에는 간단한 상식부터 복잡한 전문지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의 지식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아래 분과의 지식이 활용도가 높았습니다.

패션 디자인 : 현생에서 패션 디자인을 익힌 사람이 중세 유럽과 유사한 판타지 세계에 빙의했을 때, 패션 디자인 지식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코르셋・파팅게일처럼 여성의 몸을 압박하는 의상이 많은 세계에서 현대 패션 디자인은 여성의 고통을 해방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여성의 몸을 편안하게 풀어주면서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여왕 쎄씨아의 반바지>의 '유리'는 현대 사회의 편안한 여성 의복을 개발하여 이를 상업화해 낸 대표적 인물입니다(단, 빙의가 아니라 환생이라는 경로의 차이가 있음을 양지해주십시오). 유리는 당대의 여성들에게 무거운 코르셋 대신 가벼운 실크 드레스를, 옷을 기워입는 방식 대신 간편하게 여닫을 수 있는 지퍼를 제안합니다. <계모인데 딸이 너무 귀여워>의 '백합'도 유리와 유사한 사례입니다. '백합'은 아동복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경력을 살려 수양딸의 드레스를 디자인합니다. 코르셋 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드레스는 코르셋에 허리 사이즈를 맞추기 위해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던 공주를 영양실조 위기에서 구해냅니다.

 

<계모인데 딸이 너무 귀여워> 15화 中​​
패션 디자인 능력을 활용해 공주를 구하다...!

 

◆​ 의학 지식 : 어떤 시대에서든 인체를 깊이 이해하고 질병 치료법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빙의 사례들은 살펴보면, 차원을 막론하고 인체는 대체로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외과 의사 엘리제>의 '엘리제'는 악덕 황태자비로 처형당했다가 한국 사회에서 태어나 의학 지식을 습득한 외과 의사가 된 사례입니다. 의사였던 엘리제는 다시 자신이 살던 이전의 삶으로 빙의해, 한국 사회에서 학습한 의학 지식을 십분 활용합니다. 이세계에서는 다소 생소한 당뇨병을 진단한다거나 기흉 환자를 응급 처리하는 등 현대의 의학지식을 통해 의학 천재 영애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 F&B (Food & Beverage) : 음식은 어딜 가든 모든 이들의 주요 관심사입니다. <공작 부인의 50가지 티레시피>의 '하정'은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즐기던 차 레시피를 통해 귀족 사회 안에서 입지를 다지고, 나아가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둡니다. 그뿐 아니라 차를 이용해 불치병으로 알려진 괴혈병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차를 우리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직접 찻잎을 선별하고 블렌딩하는 등 차에 대한 조예가 깊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음식 분야에서 걸출한 성공을 거둔 <로열 셰프 영애님>도 있습니다. 귀족 영애가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마침 '세나'가 빙의한 세계관에서는 '총요리장'이 공작가 버금가는 권위자의 위치입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매일같이 팬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세나의 일상이 이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특히 작품 초반부에서는 '양념치킨'을 통해 까다로운 오라버니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등 차원을 초월한 요리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공작부인의 50가지 티 레시피> 58화 
다들 차 우리는 법 정도는 알고 있죠?

 

위와 같은 사례를 종합한 결과, 세계가 달라지더라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영위하는 삶의 요소는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사람에게 기초적으로 필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전문 지식을 취득한다면, 빙의 이후에도 활용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추천 직업 : 패션 디자이너, 헤어 디자이너, 의사, 간호사, 요리사, 파티셰, 대장장이, 소믈리에, 바리스타, 자동차 정비공 등

 

2) 경험

빙의했을 때 이전 생의 기억을 잊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빙의자들이 이전 생을 온전히 기억하곤 했습니다. 이 덕택에 현생에서 겪은 경험들은 빙의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새로운 세계에서 직감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처세술 : 대체로 신분제 사회가 많은 로맨스 판타지 특성상, 주변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적절한 반응을 구사하는 처세술의 중요도가 높았습니다. <TL소설 속 시녀가 되었습니다>에서 시녀 '니나'에 빙의한 '화윤'은 생전에 겪었던 경험들을 통해 황실 안의 시녀들과 순조로이 관계를 맺습니다. 아이돌을 '덕질'하는 친구들과 함께했던 경험을 살려 시녀들에게 황제를 자신이 선망하는 아이돌처럼 묘사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또한 화윤은 특유의 처세술을 발휘하여 시녀장에게 첫인상부터 호감을 얻어내기도 합니다. 화윤이 현생에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경험은 빙의 이후에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 이 같은 사례는 웹툰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 법>에서도 포착됩니다. <그 기사가 레이디로 사는 법>에서 레이디 '루시펠라'가 된 '에스텔'은 기사 시절의 경험을 십분 활용해 위기에서 용감히 탈출합니다. 전쟁터에서 숱하게 맡아 본 피 냄새, 마주친 마수의 성향, 말을 조련하는 법 등 에스텔로 살아가며 쌓은 경험들은 '루시펠라'로 살아남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TL 소설 속 시녀가 되었습니다> 5화 
가랏 나의 필살기!! 맞장구치기 스킬!!

 

◆​ 연애 기술 : 빙의하는 세계의 장르가 로맨스 판타지인 만큼, 이성애 로맨스가 작품마다 비중 있게 등장하곤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현생의 연애 경험이 빙의 이후의 세계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체로 현생에서의 연애 경험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 빙의 이후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에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연애 (시뮬레이션) 경험이 빙의 이후에도 도움을 주는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그 남주와 이별하는 방법>의 '영아'가 현생에서 차곡차곡 쌓은 연애 시뮬레이션의 경험이 게임 속 여자 주인공으로 빙의해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크게 일조한 것입니다. 빙의한 세계 자체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속이라는 특이점이 있지만, 지금까지 공략해 온 연애 시뮬레이션 경험이 실제 빙의 이후의 연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여러 경험을 쌓다 보면, 자연히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맺는 기술은 빙의 이후의 세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귀족 영애로 빙의한다면 사교계에 나서야 할 확률이 높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추천 여가 활동 : 동호회, 인터넷 커뮤니티,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전략 게임, 아이돌 팬클럽 활동 등

 

3) 반사 신경

일반적으로 반사 신경은 육체에 귀속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놀랍게도 영혼을 따라 빙의 이후에도 발휘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일례로 <황후궁 체대생>에서 황후로 빙의한 '해설'은 쉴 새 없이 황후를 향해 날아드는 암살 위협에서 살아남습니다. 놀라운 반사 신경을 발휘하여 해설은 갑작스럽게 뒤쪽에서 파고드는 검을 알아차리고 맨손으로 잡아챕니다. 날아오는 책을 한 손으로 잡아내기도 하고, 암살자의 다리에 돌을 던져 명중시키기도 합니다. 빙의자의 신체를 빌린 만큼 근력 자체에는 차이가 있지만 예민한 감각과 재빠른 반사 신경만큼은 빙의 이후에도 유효했습니다.

 

<황후궁 체대생> 2화 
이 정도 반사 신경이라면 로판 세계에 빙의해도 거뜬~

 

이와 유사한 사례로 <진홍의 카르마>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암살 부대원 출신인 '카시야'는 신성과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의 여기사로 빙의합니다. 기사의 몸에 빙의했다 하더라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적 없는 평민 여기사의 몸이었기 때문에 민첩도, 근력 등 여러 면에서 뒤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카시야는 빙의한 신체에 굴하지 않고 특유의 반사 신경과 예민한 감각을 통해 타인의 기척을 재빨리 인지합니다. 예고되지 않은 아군의 급습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물속에 숨어있던 황태자의 존재를 금세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잘 단련된 반사 신경은 신체에 구애 받지 않고 빙의 이후에도 요긴하게 활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반사 신경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도록 안전한 시대로 빙의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빙의 사례를 관찰했을 때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정치적 혹은 심정적인 이유로 납치되거나 감금되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빙의한 이후에는 어떤 위험 상황에 놓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생에서 반사 신경을 단련해두는 것을 권장합니다.

추천 스포츠 : 배드민턴, 테니스, 탁구,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구기 종목뿐만 아니라 e스포츠도 반사신경을 키우는 데에 있어 효과적입니다)

 

다. 기대 효과

본 제안을 통해 빙의를 희망하는 이들이 사전에 빙의에 대응할 수 있도록 대비책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갑작스레 들이닥치는 빙의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빙의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빙의에 대비한 직업・여가・스포츠 활동을 통해 현생에서도 새로운 삶의 동력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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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의 후일담은 팟캐스트 '웹투니스타'의 파일럿 방송 <그 비평가가 로판에 고료를 탕진한 사연>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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