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는 작년 서울의 한 백화점에 들어섰다가 반가운 캐릭터를 만났습니다. 이동건 작가님의 <유미의 세포들>의 세포들이 그려진 입간판이 백화점 1층에 위치한 화장품 코너에 서 있었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는데 <유미의 세포들> 뉴욕치즈케이크, 냉동만두, 그리고 맥주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를 찾아보려고 한 게 아닌데, 아무래도 눈에 익은 캐릭터가 보이니 상품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핸드앤몰트가 내놓은 "유미의 세포들 맥주". 잔 세트도 예쁩니다.(출처=핸드앤몰트)

이제 IP확장은 한국의 독자들에겐 아주 친숙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글로벌 독자들에게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죠. <스위트홈>, <D.P>,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지난 1년간 웹툰 원작으로 글로벌 이슈를 만들어낸 작품들입니다. 최근 공개된 <7FATES : CHAKHO>의 한국 네이버웹툰 티저 영상에는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다”는 전세계 팬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만화나 웹툰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익숙한 글로벌 독자들은 아직 애니메이션화가 가장 크게 닿겠지만, 점차 ‘다른 매체로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이죠.

이런 IP확장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오늘은 그걸 한번 알아봅니다.

 

 인터넷 세상과 현실세계의 벽

인터넷의 등장 이후, 웹툰은 가장 효과적인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잡습니다. 게시판 문화에서 비롯한 ‘짤방’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한 한국의 인터넷 문화는 웹툰과 너무나 잘 맞았죠. 지금까지도 쓰이는 짤방들 중에는 “야인시대” 심영의 ‘고자라니’를 발전시킨 ‘심영물’이 대표적입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낸 시기라고 봐도 좋겠네요.

그리고 포털을 중심으로 웹툰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다음웹툰이 강풀의 <순정만화>를 필두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는데, 당시에는 다음웹툰 서버가 터져나가는(?) 경우가 박찬호 선수의 등판 경기와 강풀 작가의 작품이 올라오는 날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보여주다 보니, 당연히 영상화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겠죠?

2006년 강풀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아파트>가 개봉합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고소영 배우가 캐스팅되며 화제를 낳은 이 작품의 관객은 다음영화 기준 54만여명,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2008년 <바보>는 96만, 박찬호의 경기와 더불어 서버 터지는 날을 만들었던 <순정만화>는 73만으로 100만 관객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바보>에는 차태현과 하지원, <순정만화>는 유지태와 이연희라는 스타배우들이 출연했지만 100만의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웹툰 원작은 흥행하지 못한다’는 말을 낳으며 웹툰 원작의 영상화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심어준 계기가 됐죠.

물론 첫 술에 배부를리는 없겠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인터넷 상에서 이 작품들의 인기는 더할나위 없었습니다. 강풀이라는 이름이 당시 웹툰판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흥행 실패는 이해하기 어려웠죠. 도대체 왜 이렇게 흥행하지 못했던 걸까요?

 


 

에디터는 그 이유를 인터넷 문화와 대중문화의 격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보급률은 2000년대 중반이 되면 인터넷 보급률은 78% 가까이 오릅니다.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인터넷이 보급됐지만, 아직 현실세계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단계, 즉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 빚어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문화를 주로 만들고 즐기는 고관여층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고, 초기 웹툰 원작의 흥행 실패가 의아한 일이었겠지만,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문화의 주류 소비자들에겐 웹툰 원작이라는 사실이 메리트보다는 디메리트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또는 ‘나는 즐기지 않는’ 콘텐츠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죠. 더군다나 당시 ‘오타쿠’를 바라보던 사회의 시선을 생각하면 ‘만화 원작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죠. 즉, 당시 웹툰은 서브컬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특수한 계층이 깊게 즐기는 콘텐츠로 여겨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인터넷이 익숙한 세대의 등장

이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10년 들어서였습니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보급하기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난 2010년, 윤태호 작가의 <이끼>가 웹툰 원작 최초로 100만 관객을 넘어 340만 관객을 돌파합니다. 웹툰 원작이 ‘된다’는 걸 확인한 것은 바로 HUN 작가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695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박’을 터뜨렸고, 2014년 <미생>이 장그래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이제는 ‘웹툰 원작은 흥행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점점 변해갑니다. 여기에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시리즈 모두가 쌍천만 영화로 역대급 흥행에 성공, 이제 웹툰의 ‘OSMU’가 정점에 다다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금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집니다. 이제는 “이거 웹툰 원작이야?”라고 묻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지난 설에 에디터는 “오징어게임도 웹툰 원작이지?”라는 질문을 어른들에게 세번이나 받았습니다. 흥행작=웹툰 원작이라는 생각이 대중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보면, 너무 주모 찾는 멘트일까요?

 

 

그럼 왜 이런 성공이 가능했을까요? 2000년대에 웹툰은 이미 대중에게 익숙했지만, 보는 방식이 대중매체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중매체를 대표하는 TV와 영화는 ‘함께 보는’ 콘텐츠였습니다. TV는 당연히 리모컨을 쥔 사람이, 그리고 영화는 티켓을 사는 사람이 결정권을 더 크게 갖습니다. 한국에선 그건 보통 어른들이죠. 그래서 2000년대에는 모두가 같이 볼 수 있는 시트콤, 그리고 개그 프로그램 등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크게 흠잡을데 없고, 보면 즐거우니까요.

반면 웹툰은 ‘혼자 감상하는’ 콘텐츠입니다. 만화책이나 웹툰을 친구랑 같이 보면 누군가 한 명은 기다려야 합니다. 친구가 기다리는 걸 본 사람은 조급해지죠. 두 사람 모두의 감상 경험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지만 2010년이 지나면서, 영화나 드라마 역시 점점 ‘혼자 보는’ 콘텐츠가 됩니다. 바로 스마트폰의 등장 때문이었죠. 여기에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가 나이를 먹고 ‘매체 결정권을 가진’ 어른이 됩니다.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 즉 웹툰을 보던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거나 성인이 될 무렵, 사건이 하나 생깁니다. 바로 스마트폰과 OTT의 등장입니다.

 

 스마트폰과 OTT

스마트폰의 등장은 ‘함께 보는’ 매체였던 영화와 드라마가 ‘혼자 보는’ 콘텐츠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런 흐름은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핵가족이 늘었고, 개인용 PC 보급과 노트북 보급이 늘어나면서 방에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죠. 이런 흐름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스마트폰의 보급입니다.

 

한국에서 서비스중인 대표적인 OTT, 또는 동영상 서비스들. 이보다 몇배 더 많은 서비스가 글로벌에서 경쟁중이다.

개인용 PC와 노트북이 ‘개인적 감상’의 시대를 살짝 열었다면,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를 더해 아예 문을 박살내고 새 시대를 알렸습니다. 2016년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가 2019년에 웹툰 원작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낸 것이 김은희 작가의 <킹덤>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체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에서는 세 번째로 나온 것이 천계영 작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좋아하면 울리는>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총 18작품(연속 시즌 포함)이 공개됐는데, 그 중 6작품이 웹툰 원작입니다. ‘만화와 연관이 있는’것 으로 범위를 넓히면 <킹덤> 시리즈가 포함되니 총 9편이 됩니다. 정말 넓게 잡으면 절반이 웹툰, 또는 한국 만화와 관련이 있는 거죠. 물론, 웹툰으로 한정해도 1/3에 달합니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는 IP확장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 OSMU와 IP확장의 차이

자, 그럼 왜 에디터는 아까 <신과 함께>의 흥행을 이야기하면서 ‘OSMU’라고 말했을까요? 그건 OSMU와 IP확장이 약간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원작 콘텐츠를 다른 매체로 전이한다는 관점에서 둘은 같습니다. 하지만, 주체를 생각하면 차이가 보입니다.

자, OSMU는 ‘원 소스 멀티 유즈’, 즉 하나의 원천 콘텐츠를 여러 갈래로 활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때 각각 다른 갈래로 활용하는 주체들은 각각의 독립된 주체로 콘텐츠를 ‘활용(Use)’합니다. 그러니까 웹툰 원작의 작품을 만들더라도 원작을 그대로 살리기보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생각하는 작품에 쓰기 위한 ‘원천 콘텐츠(Source)’로 사용하는 거죠.

하지만 IP확장은 주체가 IP입니다. IP의 생명을 연장하고, 시너지를 내기 위해 원작 콘텐츠를 확보한 플랫폼이나 원작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웹툰은 자회사인 영상 제작사 스튜디오N을 설립, <타인은 지옥이다>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작품을 공동제작으로 선보였습니다. 자회사 LICO는 웹툰을 전문으로 제작하기도 하죠. 카카오웹툰은 작가들이 직접 극본을 써서 <이태원 클라쓰>를 선보였고, 강풀 작가 역시 디즈니+에서 준비중인 <무빙>의 극본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원작 콘텐츠를 살려서 ‘IP’를 ‘확장’하는 것이 IP의, 그리고 플랫폼의 수명을 늘리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보면, 웹툰의 IP확장은 ‘웹툰이 보여주는 세계관을 다른 매체로 확장시키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시도를 성공적으로 해낸 곳이 있었기에 지금 이런 시도도 가능했습니다. 바로 마블입니다. 공교롭게도 마블 역시 코믹스 세계관을 바탕으로 MCU를 창조해 역대 최고의 프랜차이즈로 자리잡았는데, 웹툰은 그걸 하나의 통합 세계관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세계관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겠네요.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어디서나 <유미의 세포들>을 만나고, 글로벌 수십개국에서 가장 관심받는 콘텐츠를 이미 몇년 전에 본 독자들이 됐습니다. 이 흐름은 글로벌로도 이어질 겁니다. 지금은 느리게 보여도, 언젠가 미국의 마트와 브라질의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웹툰 캐릭터가 그려져 있을 겁니다. 그러니 BTS도 결국 IP확장의 물결을 타고 BT21에 이어 세계관 콘텐츠를 내놓고 IP 수명 연장을 위한 IP확장에 나서고 있습니다. 보는 방식이 바뀌고, 즐기는 방식이 바뀐 지금 웹툰계는 IP확장의 주도권을 쥐고 중심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물을 즐기고 있는 거고요.

 

웹툰의 IP확장은 단순히 ‘운이 좋아서’, 또는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이전의 OSMU가 ‘다른 주체가 자신의 방법으로 원천 콘텐츠를 해석하는 것’에 가까웠다면, IP확장은 ‘IP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넓혀나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IP확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다음 칼럼에서는 더 재미있고 알찬 내용으로 찾아올게요.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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