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넷플릭스와 헐리웃 얘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최근 넷플릭스는 역대급 주가 하락을 맞고 있습니다. 주가는 5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180달러 선을 오락가락 하고 있어요. 팬데믹 이후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넷플릭스의 폭락을 두고 여러 논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하우스 오브 카드>,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기묘한 이야기>, <베터 콜 사울>등 넷플릭스가 자랑하는 엄청난 퀄리티의 시리즈를 만들어낸 장본인,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프로그램 부문 부사장을 맡았던 신디 홀랜드(Cindy Holland)와 얽힌 루머가 있습니다. 신디 홀랜드는 ‘될 만한 작품’에 파격적인 투자를 하고, 그걸 다시 엄청난 가입자로 환원하는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업계 종사자라면 '되는 콘텐츠'를 알아보는 재능이 얼마나 귀한 지 알 겁니다. 신디는 그걸 정말 잘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 

신디 홀랜드(좌)와 벨라 바자리아(우)


이때 CBS와 유니버셜 TV의 중역이던 벨라 바자리아가 2016년 넷플릭스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고 벨라와 신디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홀랜드는 퀄리티로, 벨라는 양으로 승부했습니다. 이걸 외신에서는 ‘넷플릭스의 월마트화’라고 표현했죠. 벨라 바자리아는 신디 홀랜드가 제작하지 않기로 결정한 작품들까지 부활시키는데, 그 중에는 ‘채울 수 없는’이라는 다크 코미디물도 있었고요. 평가는 처참했지만, 의외로 시청률은 잘 나왔습니다. 이건 넷플릭스에 어떤 신호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2020년, 벨라 바자리아가 글로벌 콘텐츠 수석으로 승진합니다. 사실상 벨라 바자리아가 이긴 거죠. 이 결정을 내린 공동 CEO, 테드 사란도스는 콘텐츠보단 사업에 능한 사람입니다. 자, 그럼 신디 홀랜드는 선의로 사업을 하다가 피해를 본 사람일까요? 신디가 콘텐츠를 맡던 시절, 시리즈 하나당 제작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신디의 ‘콘텐츠 제작 능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효율성이나 경영자로서의 능력에는 항상 의문이 붙었습니다. 

벨라가 입사한 2016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오리지널 시리즈(출처=what's on netflix)


반면 벨라는 예산을 잘 조정해 작품을 만들기로 유명했죠. 그렇게 예산을 조절해서 ‘효율 좋게’ 만들어낸 작품 중에는 <루팡>과 <오징어게임>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결과로도 증명하지 않았나 싶죠? 그런데, 문제는 넷플릭스가 수없이 많은 작품을 만들다가 한두개가 성공했다는 겁니다. 2021년 넷플릭스가 전세계에 런칭한 오리지널 시리즈는 257편입니다. 세계 진출을 시작했던 2016년 31편과 비교하면 거의 8배가 넘게 늘어났습니다. 그동안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오리지널 편성 가격도 비싸졌으니, 이러나 저러나 결국 드는 돈이 많은 건 마찬가지라는 거죠. 이 때문에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콘텐츠 큐레이션이나 제작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라고 합니다. 정교한 큐레이션이 무기인 넷플릭스가, 일단 양으로 승부하면 하나는 터진다는 전략을 쓰고 있으니 곡할 노릇이었을 겁니다.
그럼 헐리웃 얘기도 해볼까요? 지난 2021년 12월 15일, ‘헐리우드 리포터’ 지에 재밌는 기사가 하나 올라옵니다. “벤 애플렉이 생각하는 ‘라스트 듀얼’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와 리들리 스콧이 밀레니얼을 비판하는 이유(Ben Affleck on Why ‘The Last Duel’ Bombed and What He Thinks of Ridley Scott Blaming Millennials)”라는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기자가 벤 애플렉에게 “’라스트 듀얼’이 극장 성적은 처참한데,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순위는 높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그러자 벤 애플렉은 이렇게 답합니다.​



“2007년에는 600편 정도가 한 해 동안 개봉했어요. 제 영화 ‘가라 아이야 가라’가 개봉했던 주에만 7 작품이 동시에 개봉했고요. 그렇게 경쟁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까 ‘라스트 듀얼’이 스트리밍에서 성적이 좋았던 건,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플랫폼들이 가진 마케팅 역량과 추천 역량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자, 아마존을 생각해 보자고요. 모두가 아마존을 쓰죠. 식료품, 냉장고, 뭐든 다 아마존에서 구입하잖아요. 아마존은 우리가 뭘 사고, 뭘 좋아하는지 알죠. 이제는 우리가 시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공룡처럼 멸종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벤 애플렉의 말은 ‘시장이 변화하고 있고, 그 시장에 적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극장에 간다는 총체적 경험을 사기 위해 극장에 가고, 그렇기 때문에 마블과 같은 ‘유명한’ 작품을 극장에서 볼 거라고요. 이제 극장의 본질이 변했고, 감상을 위한 의미 있는 작품은 스트리밍으로 보게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어디에 투자하시겠습니까?
시장의 관점에서 ‘잘 나가는’ 쪽에 엄청난 자본이 몰리고, 그러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지는 건 당연하고, 오히려 장려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성공하는 작품들이 나오고, 또 그쪽으로 돈이 몰리고, 그 과정에서 ‘창작’이 아니라 철저하게 설계된 ‘상품’이 주목받고. 어라?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그림 아닌가요? 바로 넷플릭스에서 발생한 신디와 벨라의 갈등과 닮았습니다. 벤 애플렉의 발언은 그 안에서 아티스트이자 사업가인 개인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되겠죠. 이 두 사례를 합치면, 웹툰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사실 모든 콘텐츠 시장에 적용될 수 있는 문제기도 하고요.

자, 넷플릭스의 사례는 아주 복잡합니다. 몇 개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쏟아붓는 신디, 그리고 같은 돈을 더 많은 작품을 만드는데 써서 그 중 하나가 ‘터지는’ 시장을 만드는 벨라. 여러분이 투자자라면 어디에 투자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신디의 마스터피스에 투자하겠다고요? 하지만 투자는 언제나 위험을 분산하라고 하지 않던가요? 돈을 많이 들인다고 반드시 명작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그런 작품은 떠오르지 않는다구요? 네. 망한 작품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독자는, 시청자는 생각보다 많이 냉정하죠. ​ 

 

기린의 긴 목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진화가 언제나 긍정적 변화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반면 ‘시장에 적응하라’는 벤 애플렉의 말은 아주 간단합니다. 벤 애플렉은 감독이기도 하고, 유명한 배우기도 하고, 시장에 적응만 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재능을 가진 스타죠. 시장에 적응하기 수월한 사람이 ‘시장에 적응하라’는 말을 하는 건 아주 간단한 해법입니다. 그리고 또 미국적이기도 하고요.

웹툰계도 비슷한 평가를 받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비슷한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에서 매출이 나오는 작품들이 생기고, 그게 순환을 이루고, 그러다 ‘터지는’ 작품이 나오면 된다는 마인드. 벨라의 마인드와 비슷하고, 그게 창작을 해칠 거라는 비판이 나오죠. ‘시장이 변했으니 적응하라’는 애플렉의 말은 웹툰계에는 먹힐 수 없습니다. 개인 창작자의 입장에선 ‘적응’ 하면 공룡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니까요.

* 상업화가 낳은, 상업화가 만든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면서 사람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차별성’ 입니다. 다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콘텐츠,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시리즈가 나왔기 때문이죠. 2013년 첫 선을 보인 이 시리즈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했죠. 거기에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소위 ‘오뉴블’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게 가능했던 건, 기존 레거시미디어의 제작 역량을 풀 수 있는 채널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케이블 채널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미국이 만든 TV 시리즈의 전성기는 2000년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렌즈>, <HIMYM>, <빅뱅 이론>과 같은 시트콤은 물론 <CSI> 시리즈, <The Wire>, <West Wing>과 같은 드라마까지 전세계를 주름잡았습니다.
이렇게 쟁쟁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엄청난 경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업무량으로 인해 헐리웃 작가들이 파업에 들어가면서 <HEROES>와 같은 작품은 아예 셔터를 내리기도 했죠. 그리고 리얼리티 쇼들이 등장하고, 소위 ‘막장 프로그램’들이 활개치면서 TV쇼는 돈과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자극적인 소재의 온상이 됩니다. ​ 

길이 단 하나라면, 차례를 지키기보다 새치기를 하는게 나에겐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입니다. 전체에는 고통이지만.

 
상업주의의 실패입니다. 당연히 작품성은 떨어지고, 여기에 돈을 대던 사람들은 갈 곳을 잃었죠. 그때 신디와 넷플릭스가 등장한 겁니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어디서도 못 본’ 작품성 높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함께, 미국 TV 산업에 떨어졌죠.
벤 애플렉의 경우는 어떨까요? 벤 애플렉의 별명 중 하나는 ‘선댄스의 자식’입니다. 1978년부터 미국 유타주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는 저예산 독립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주로 다루고, 여기서 작품을 선보인 감독과 배우들이 크게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됩니다. 여기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들 중 한 명이 바로 밴 애플렉이고요.
상업주의의 실패가 만들어낸 상업주의의 끝판왕 넷플릭스, 독립시장이 키워냈지만 시장에 적응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벤 애플렉. 꽤나 재밌는 충돌입니다. 둘 다 ‘현재 시장의 지속’을 전제로 전략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이제 본격적으로 웹툰 얘기를 해 보죠. 지금 웹툰계의 큰 화두 중 하나, ‘상업화된 웹툰’이라는 문제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사례를 적용시켜 보면 웹툰은 일단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앞서 말한대로, 넷플릭스의 벨라가 취한 전략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팔리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현금을 확보하고, 다음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죠.
‘팔리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웹툰계에서는 한가지 답을 찾아냈습니다. 웹소설 원작의 웹툰화입니다. 웹소설 원작의 웹툰화는 시장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스튜디오들이 많이 생겨났고, 투자금도 많이 받게 됐죠. 여기서부터 넷플릭스가 빠진 순환고리에 부딪힙니다. 돈을 투자했으니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고, 그러려면 양을 늘리고 돈을 순환시켜야 합니다. 양을 늘리려면 퀄리티는 일정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핵심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선택과 집중을 하려면 뭐가 잘 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걸 잘 하려면 시장 분석 능력, 기획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단 규모를 갖추려면 인력을 끌어다 써야 하니, 전체를 볼 줄 아는 인력을 길러 내긴 어렵습니다. 모든 산업에서 시간은 금이니까요.​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거대한 바구니 모양의 호텔. 1997년 설립됐다고 하네요. 여기다 계란을 담으면(후략)

 
일단 현재의 상황에서, 양대 플랫폼이 취하고 있는 전략은 ‘글로벌화’로 보입니다. 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지면, 공간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기회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어느정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경쟁이 치열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터질’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형 플랫폼이 직접, 모두 만들고 팔고 제작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문제입니다. 직접 자회사 제작사를 차리고, 유통을 맡고, 번역과 매니지먼트, 신인의 등용문, 웹소설, 제작의 영역은 물론 신규 인력 창출까지 모두. 플랫폼이 아주 거대한 바구니가 되어 모든 계란을 담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투자의 묘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입니다. 아무리 바구니가 커도, 한 바구니 안에 계란을 다 담아선 안되지 않을까요? 바구니가 크면 클수록 맨 밑에 있는 계란은 손이 안 닿을 거고, 위에서 누르는 달걀의 무게 때문에 터져버리진 않을까요? 플랫폼이라는 바구니가 아무리 거대해도, 모든 달걀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달걀들은 바구니 안에서 위로 튀어나가기 위해 선정성 경쟁을 하게 되겠죠. 마치 미국에서 TV가 그랬던 것처럼, 자극적인 시장에 매몰되어 선정성 경쟁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지치고, 새로운 것이 등장했을 때 그곳으로 많이들 떠나갈 겁니다. 

* 한가지 더, "만화"만이 할 수 있는 것.
시장을 볼 줄 알고, 작품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만드는 사람. 그런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수단 중 하나가 영화계에선 선댄스 영화제로 대표되는 독립시장의 역할입니다. 국내에선 <벌새>와 <윤희에게>와 같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의미할 겁니다. 이런 것들이 가능한 건, ‘영화만이 가능한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겠죠. 영화가 주는 아름다움, 영화가 주는 감동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선댄스 영화제를 유지시키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44년간 선댄스 영화제가 유지될 수 있었겠죠.
여기에 대한 대답은 모두 다를 겁니다. 이 시장은 기본적으로 대중예술을 지향하고, 대중매체 중에서도 1위만이 빛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를 닮았습니다. 네이버웹툰의 본사와 카카오페이지의 운영사가 각각 웹툰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엔터’를 이름에 달고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죠. 그래서, 우리의 질문은 ‘상업화가 문제다’보다는 조금 더 날카로워야 합니다. 그 말은 역사에서 무의미하게 반복되어 왔거든요.

1936년 7월 3일 동아일보 사설 “통속소설에 대하여”에서는 “우리집 아이놈은 소설 전집 중에서 예닐곱권만 읽고 더 이상 읽지 않기에 ‘왜 그러느냐’ 물으니 ‘그만큼 읽고 나니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다음 것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런 예는 조선의 이광수, 윤백남을 두고도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재미를 붙여 읽다가도 나중에는 권태와 몰취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또 1939년 10월 3일 조선일보 사설 “신극의 투기화”에서는 “신극이 경멸받은 이유는 흥행에만 몰두해 관객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오히려 관객에게 교태와 아양을 부려 값싼 오락의 도구를 자처했음에 있다”고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매체에 쏟아지는 비판이 지금의 웹툰이 받는 비판과 어딘가 비슷하지 않나요?​ 

한때 유행했으나 이제는 명맥이 끊긴 '신파'극, 또는 '신극' (출처=민족문화대백과)

 
하지만 소설은 살아남았고, 신극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신극은 대체할 수 있어서? 지금도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짧은 식견이지만 에디터는 그것이 ‘새로운 것과 신극만의 미학을 보여주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30년대 부흥기를 맞았던 신극은 1950년대가 되면서 ‘꼰대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거든요. 

* 제3지대와 독립시장, 그리고 개인창작자
에디터의 글이 만약 100년 전 신문 사설처럼 미래에 인용된다면, 에디터는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웹툰’이라는 문장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물론, 만화라는 방식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웹툰이 만화의 한 갈래이자, 대중에게 익숙한 상업-예술분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에디터는 오히려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되는 건 아닐까 하는 지점을 우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화가 가진 만화만의 미학, 만화만이 가능한 것을 놓치고 더 큰 산업, 돈이 더 되는 산업의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것 말이죠. 산업의 성장과 미래를 위해서 놓을 수 없지만, 주객이 전도되는 건 그다지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앞서 말한 ‘선댄스’같은 독립시장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 더 있습니다. 흔히 '산업'을 이야기할 때 놓치는 부분, 바로 개인창작자와 독자들입니다.​ 

얼룩이 제시한 '절대 영화로 못 만들 만화'는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작가들 중에는 독립만화 활동을 하고, ‘만화라서 가능한’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독자들도 분명 존재하고요.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스튜디오 작품이 있으면, 개인이 만드는 창작 작품도 있습니다. 에디터는 그 독자들과 작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영감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과정에서 ‘웹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도 눈에 띄게 될 겁니다. 개인 창작자들이 산업계의 도움으로 해내고 있는 놀라운 성과들을 찾을 수 있겠죠. 
무적핑크, 이리 작가의 <삼국지톡> ‘적벽대전_64. 火 (7) 불타는 적벽’에서 가장 가벼운 형식, 컷툰이 어떻게 ‘만화’일 수 있는지, 가로로 넓은 스크롤 만화의 가능성으로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송곳>이후 흑백 만화를 주로 선보였던 최규석 작가는 <계시록>에서 컬러로 돌아왔는데, 6화에서 그 이유를 한 컷으로 보여줍니다. 조석 작가의 신작 <죄송한데 주인공이세요?>는 ‘회빙환’과 ‘학원액션물’로 대표되는 현재 웹툰계를 장르와 장르, 현실과 작품, 작품 속 작품의 벽을 뛰어넘으며 풍자하기도 했고, 정지훈 작가의 <더 복서>는 파격적인 구성과 연출을 선보인 다음, 마지막에 인류애라는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넘기기만 하는게 컷툰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삼국지톡> (출처=와이랩)

 
개인 창작자들도 혼자 작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삼국지톡>은 와이랩과, <계시록>은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되고 있는데, 연상호 감독의 회사 ‘스튜디오 다다쇼’가 펴내고 있습니다. 2021년 최고의 히트작 <더 복서>는 울트라미디어와 함께 만들었고요. ‘산업화’를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건 오히려 지금의 시장을 부정하는 일이 될 겁니다. 개인창작자의 과한 업무량,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피해, 그러나 그것으로 얻어낸 성취를 생각하면 더더욱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넷플릭스나 벤 애플렉의 사례와 1:1로 대응시킬수는 없죠.
웹툰만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이야기하는 건 오로지 독자만이 가진 특권입니다. 에디터는 이 특권이 방 안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가 모여서 이야기하는 공간 안에서도 의미있게 해소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3지대, 대형 플랫폼이나 상업주의적 시장에서 만들어내는 ‘상품’으로서의 만화가 아니라 ‘만화’로서의 만화를 만드는 곳이 필요합니다. 마치 ‘영화’를 선보이기 위한 영화제 처럼요. 만화계에서 플랫폼이 아닌 제3지대가 열리기 위해선, 당연하게도 관심과 투자가 필요할 겁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당장 팔리는 만화’에 대한 정보와 함께 ‘만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나누는 일일 겁니다.

여러분은 만화를 무엇 때문에 보시나요? 또는, 무엇 때문에 만드시나요? 웹툰은 왜 보시고, 왜 만드시나요? 시장이 커지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이 글을 읽을 작가, 독자, 그리고 업계인 여러분 모두에게 고민할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상업화가 문제라고 할 수만은 없는 산업계의 구조, 그 안에서 ‘웹툰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그럼, 다음 칼럼에서 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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