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로맨스와 로판이 대세라고들 하죠. 사실 이것도 좀 지난 말이긴 하지만,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합쳐 ‘로로판’으로 불리는 이 장르들은 한동안 웹툰계를 뒤흔든 가장 강력한 장르들입니다. 실제로 ‘비슷한 장르, 비슷한 작품이 너무 많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장르적 다양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 역시 그렇습니다. 

 

실제로도 그런지 먼저 한번 보도록 할까요? 먼저 8월 30일까지 웹툰인사이트가 수집한 서비스중인 작품의 숫자는 4만 4천여종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 플랫폼에서 ‘로맨스’ 태그를 붙인 작품은 로맨스와 로판을 포함해 7,500여 작품입니다. 전체 장르 중에 약 17%입니다. 여기에 ‘스토리’, ‘드라마’ 같은 복합장르 중에서 로맨스 요소가 있는 작품을 전체 비율인 17%로 가정해서 더하면 20% 내외 정도의 비율이 나옵니다. 생각보다 적죠?

 


 

이건 모든 플랫폼을 다 망라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물론 유효합니다. 그럼 대표적인 플랫폼인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의 신작들을 한번 살펴보죠. 네이버웹툰이 2021년 선보인 작품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스토리’로 표기한 장르입니다. 41.7%에 ‘스토리’를 넣어두었는데 이건 크게 의미있는 장르 구분은 아니니 그 다음, 18.2%를 차지한 장르를 보죠. 바로 로맨스입니다. 네이버웹툰에서 단독 장르로 가장 많이 작년에 런칭한 작품이 바로 로맨스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카카오페이지도 한번 보죠. 카카오페이지는 장르 구분이 단순한 편입니다. 드라마가 21.3%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로판으로 20%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19.4%가 액션무협, 15.2%가 소년만화, 그 다음 14.6%가 로맨스만화입니다. 복합장르인 드라마를 제외하고 ‘남성향’으로 분류되는 액션무협과 소년만화가 합쳐서 34.6%, ‘여성향’으로 분류되는 로맨스, 로판이 34.6%으로 같습니다. 여기에 BL이 더해지면 ‘여성향’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조금 더 많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왜 우리는 ‘로판’을 대세라고 인식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한번 찾아보도록 하죠.

 

1. 로판 웹툰이 많이 쏟아지는 이유

먼저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 소위 ‘로로판’이 많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의 이야기 갈등 구조를 아주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면, 주인공이 남주/여주와 사귀냐 못 사귀냐로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풀어져야 하고, 주인공이 선택하느냐, 또는 선택받느냐로 귀결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등장인물 구성을 단순화하는게 가능해집니다.

‘사귀냐 못사귀냐’로 단순화시킬 수 있는 스토리, 그리고 한정된 등장인물은 캐릭터의 개성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소위 ‘납작한’ 캐릭터가 양산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꼽히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작품들이 늘고 있죠.

 

여기에 로로판이 가지는, 웹소설 원작의 웹툰화에서 가지는 압도적인 강점이 있습니다. 바로 원작 웹소설 자체의 길이가 짧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로맨스 판타지 장르로 꼽히는 <재혼 황후>는 325화로 완결되었는데, 이건 꽤나 긴 편에 속합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188화, 카카오페이지 <사내 맞선>은 본편 69화에 외전 27화, <이번 생은 가주가 되겠습니다>는 본편 256화에 외전 56화로 시즌 완결됐습니다. 특히 ‘현대로맨스’ 장르는 작품 길이가 더 짧은 경향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결혼 협상>, <대리 신부> 같은 웹소설은 68화, 69화로 완결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판타지와 무협 장르는 <전독시>가 552화, <화산귀환>은 1362화로 연재중이고, 오히려 <나혼렙>이 본편 243화, 외전과 후일담 27화로 짧은 편입니다. 판타지나 무협 장르 중에서 짧은 축에 속하는 작품은 150화~200화 내외로 로맨스보다는 조금 더 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 혼자 잠재력 무한>은 200화로 완결됐고, <킬 더 히어로>는 212화로 완결됐습니다. 무협은 조금 더 긴 편입니다. <격투 챔피언 무림에 가다>, <무림인은 훌륭하다> 같은 작품은 250화 정도로 완결됐는데, 무협 중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축에 속합니다.

 

이렇게 로맨스 장르의 길이가 짧은 건, 앞서 말한대로 직선적인 스토리 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짧은 이야기의 작품이 ‘많이’ 만들어져 있고, 이미 완결이 나서 스토리가 완성된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빠르게 웹툰화가 가능한 거죠. 제작 과정에서도 현대로맨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방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이 필요한 판타지나 무협보다 상대적으로 품이 덜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빠르게 소위 ‘돌려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 ‘많은 작품을 빠르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대세감’의 원천입니다. 작품의 종수가 아니라, 늘어나는 속도가 ‘대세’라는 느낌을 주게 만드는 거죠.

 

그럼 제작사들과 플랫폼은 왜 이렇게 많은 로맨스 작품을 만들게 됐을까요? 여기서 독자가 중요해집니다. 타깃 독자들의 주 연령대가 20대 이상 여성인 현대 로맨스의 경우에는 모든 문화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유료 결제/구매율이 높은 소비층입니다. 웹툰화를 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오히려 힘들죠. 플랫폼 입장에서도 웹툰을 상대적으로 적게 보던 20대 이상 여성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안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맨스 웹툰의 숫자가 아주 빠르게 늘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독자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로맨스 판타지는 처음부터 인기있는 장르는 아니었습니다. 류정혜 카카오엔터 마케팅 본부장은 지난 22일 열린 광주 스토리페어에서 “1만명 보던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가 100만명 보는 장르가 된 건 분명 독자분들이 찾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웹툰이 ‘서브컬처’였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이 로맨스를 보는 이유는 뭘까요?

 

타 장르에 비해서 독자들이 바라는 점, 그리고 주인공이 원하는 바가 명확합니다. 애매하고 추상적인 성장이 아니라, 당장 내 마음에 드는 저 사람과 사귀는 것. 또는 사귀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사랑하게 되어버리는 것이죠. 때문에 독자들은 ‘사귀냐 안 사귀냐’, ‘썸이냐 연인이냐’의 갈등구조 안에서 몰입감을 느낍니다.

 

썸이 길면 연애가 망한다는 속담이 있죠(없습니다)

 

다만, 현실의 연애가 그렇듯이 로맨스 작품도 ‘썸’ 단계가 너무 길어지면 서로의 마음도, 독자의 마음도 엇갈립니다. 갈등구조 자체가 길어질 수 없고, 독자들도 길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장르가 바로 로맨스입니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 ‘남주찾기’나 ‘정치물’처럼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올 수 있게 판을 까는 방법이나, <이두나>, <상수리나무 아래>처럼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을 장황하게 풀어내는 방법을 통해서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방법도 요즘에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는 소위 말하는 ‘사이다 서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에디터의 추측입니다. 만족스러운 결과, 즉 ‘사귐 엔딩’이 사이다라면 빠르게 결과를 내 주는 게 (일반적으론) 좋습니다. 예를 들어 <치하야후루> 같은 작품은 40권 넘게 남주와 서브남주를 놓고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선택받은’ 쪽은 만족스러운 결과, 즉 큰 사이다를 받지만 ‘선택받지 못한’ 쪽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 즉 큰 고구마를 받게 됩니다. 남주와 서브남주 중에 확실하게 이어질 사람에게 빠르게 서사를 몰아주고, 서브남주는 다른 사람이랑 엮어주고, 악역은 한없이 나쁜놈으로 그리는 것. 이게 ‘큰 사이다’를 만드는 서사의 기본 아니겠어요?

 

3. 그럼 왜 판타지는 길어지는가?

 

반면 판타지와 무협은 등장인물이 많아야 합니다. 여행을 떠나거나, 문파들간의 경쟁에 휘말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악-마왕이나 드래곤-에게서 세상을 구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을 만나 파티원을 꾸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타지 장르에서는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성장’이라는 요소를 배제하고 ‘혼자 레벨업’ 시키거나, 치트키를 적용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캐릭터와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길어지게 됩니다.

 

이건 판타지, 무협이라는 장르의 틀이 가진 특성입니다. 로맨스는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에게 롤을 부여하지만 판타지는 ‘세계’가 역할을 부여합니다. 주인공이 지나가다 들른 마을에서 사건을 만나 성장하고, 던전을 뚫고 나가며 새로운 무구를 얻고, 그렇게 최종장에 진입해 귀환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리는게 판타지니까요. <반지의 제왕> 이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죠.

 

<반지의 제왕>에서 프렌징 포니 여관 장면에 등장한 '스트라이더'. 프로도 일행의 성장(과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면 로맨스에서는 ‘세계’는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주인공들의 사이를 방해하는 사회적 압력이나 신분의 차이, 서로의 부모, 가부장제나 기타 요소들이요. 하지만 판타지는 세계가 그에게 권능을(치트키를) 부여했기 때문에 세계는 조력자나 흑막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등장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능한 자(주로 작가)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이걸 절묘하게 활용한게 <전독시>의 사례겠죠?

 

때문에 웹툰화에도 적지않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액션 연출 등의 부가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캐릭터 디자인을 해야 할 요소가 많고, 설득력을 가지는 비주얼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도 생각보단 한정되어 있죠. 그렇기 때문에 시장이 커지고 나서야 판타지-무협의 웹소설 원작 웹툰화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투자하는 비용이 크면, 리스크도 그만큼 크니까요.

 

바꿔 말하면, 지금의 시장은 그만큼의 리스크는 질 수 있는, 그리고 데이터로 어느정도 성공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시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작품, 더 많은 독자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그 작품 숫자를 폭발적으로 늘리기 위한 방법, 즉 원작을 가지고 웹툰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1) 짧은 이야기, 2) 직선적인 스토리, 3) 적은 등장인물을 가진 로맨스 웹소설이 제격이었고, 많은 작품이 웹툰화가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문화생활에 가장 큰 구매력을 갖춘 20대 이상 여성을 타깃으로 작품이 늘어났고, 마침 이들이 원래 상대적으로 웹툰을 덜 보던 독자들이었다는 점이 주효했습니다.

 

끝으로 그렇게 커진 시장에서, 이제 로맨스 장르가 든든하게 허리층을 지지하는 동안 품이 많이 드는 전통적 장르, 판타지와 무협을 웹툰으로 제작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냈고, 지금 그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중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장 진화의 과정에는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라는, 빠른 사이클로 독자들을 매혹시켜 온 장르적 발전이 있었습니다. 시장의 다양성이 부족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렇게 보니 그저 단순한 이유로 로판이 ‘대세’가 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분석해 보면, 빈틈을 파고 들 방법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음에도 어디엔가 쓸모 있을지 모를 칼럼으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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