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가 향년 5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화계는 큰 충격을 받았고, 독자들 역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칼럼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 무슨 일이 있었나
웹툰인사이트에서는 지난 2020년 7월 관계자 인터뷰(링크)를 통해 내용을 전달드린 바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검정고무신>의 KBS판이 끝나고 난 2007~2008년 즈음, 사업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중이던 이우영, 이우진 작가와 이영일(필명 도래미)작가에게 형설앤이라는 기업이 접근해옵니다. 본인들이 캐릭터 사업을 할 수 있으니, 주요 캐릭터 9종에 대한 저작권 지분을 달라는 얘기였습니다. 여기서 ‘저작권 지분’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저작권 중에서 저작재산권은 양도가 가능하고, 분할해 지분구조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잘 이용하면 득이 될 수 있지만, 악용하면 독이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계약은 독이었습니다. 형설앤에서는 기영이, 기철이, 땡구를 비롯한 9종의 캐릭터 지분을 보유한 이후 사업을 진행했지만 작가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글작가인 이영일 작가에게 2천만원을 주고 지분을 추가로 구매, 총 캐릭터 지분의 53%를 가져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검정고무신>을 세상에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작가들에겐 별다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농장에서 DVD를 틀고 사인회를 했다고 형사고발하고, 작가들이 소송이 두려워 새로운 원고를 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우영 작가님은 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전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이 2005년 3기를 마무리 짓고 2006년 코믹 챔프에서, 2007년 엠파스에서 연재를 마쳤습니다. 그 이후 접근한 형설앤은 2008년 사업화를 위해 글작가인 이영일 작가, 그림 작가인 이우영, 이우진 작가에게 앞서 이야기한대로 9개 캐릭터 저작권 36%를 무상으로 양도받습니다. 이때부터 2010년 사이 여러 계약을 맺으면서 사실상 회사가 포괄적인 IP 활용 권한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때 체결된 계약들은 사실상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을 포괄하는데, 저작권을 침해하면 손해배상을 받을 권리, 작가가 계약 위반시 3배의 위약금을 물게 되는 조항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 유리하면 관행, 불리하면 계약의 자유
이 과정에서 2019년을 전후로 소송이 진행됐고, 형설앤은 “계약이 과도하다고는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우영 작가가 본인도 모르게 진행되는 사업들에 대해 문의해도 “글작가와 협의해서 진행했으니 문제없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화에 대해서도 “<검정고무신>을 원작으로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수정을 거쳤으므로 엄연히 다른 것”이라면서 “당시(2008년) 관행에 따라 맺은 계약을 지금(2020년)나온 표준계약서와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놈의 관행, 지겨운 관행이 또 등장합니다. ‘그때는 다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누가 다 그렇게 했나요? 아, <구름빵> 사태가 좋은 예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완전 매절 계약으로 문제가 된 <구름빵>은 다양한 IP확장이 성공하며 수천억원대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가에게는 보상이 제대로 주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계약은 국가도 함부로 무효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계약은 사인(私人)간의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국가도 함부로 끼어들 수 없습니다. 이걸 ‘계약 자유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개인이 독립된 자율적 권리주체로서 타인과 법적 생활을 하기 위해 ‘법의 제한’에 부딪치지 않는 한 계약에 의한 법률관계의 형성은 완전히 각자의 자유에 맡겨지는 것으로 본다는 원칙입니다. 한마디로, 쌍방이 합의하면 국가와 법도 쌍방간 합의, 즉 서명이나 인감도장으로 증명되는 동의가 있다면 승인한다는 원칙입니다. 내가 수익을 3% 밖에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계약서라 하더라도,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그걸 무효라고 할 수 없게 됩니다.
형설앤이 주장하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계약이 얼마나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명할 때 협박 등의 범죄행위가 있었는지, 계약 내용에 다른 법률을 어기는 행위가 있는지를 봅니다. 그 외에는 쌍방이 합의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내용은 사실상 정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업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특히 창작자를 보호할 제도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자의 선의에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사업자가 저작권자에게 정산 내역을 공개할 의무조차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법으로 정산증빙을 강제하는 창작, 예술 분야는 없습니다. 계약상 의무적으로 보편화된 곳은 대중문화예술(연예기획) 정도가 있겠네요. 그래서 정산서 받기가 그렇게 어려웠던 겁니다. 때문에 2005년 <그리스 로마 신화>가 1천만부가 팔렸음에도 360만부만 팔렸다고 속였던 출판사가 소송에서 사기죄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태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당연히 출판계의 매절 관행을 없애기 위한 수단들이 강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수년간 국회에서는 ‘창작자의 추가보상청구권’을 저작권법에 명시하기 위한 입법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때마다 출판단체, OTT를 비롯해 이른바 ‘매절 비즈니스’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 등장해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을 발표하고, 직접 국회의원들을 만나는 등 총공세에 나섰습니다. 이때 쓰이는 말이 ‘계약의 자유 침해’라는 말입니다. 그걸 근거로 헌법소원을 걸겠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유리할 땐 관행, 불리할 땐 계약의 자유 침해로 맞서는 과정에서, 정작 창작자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무너지고 있는 셈이죠.
* 해외 사례는 어떨까
이렇게 저작물을 완전히 양도하는 계약, 그리고 보상청구권과 정산은 해외에선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먼저 독일에서는 양도계약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독점적 사용권을 가진 것으로 봅니다. ‘양도’와 ‘독점적 사용권’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양도’는 아예 상대방의 소유가 되는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독점적 사용권’을 부여하는 건 일종의 대여인 거죠. 대신 다른 사람에게는 빌려주지 않기로 계약하는 것입니다. 소유권은 나에게 있죠.

프랑스의 사례도 한번 볼까요?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저작권을 인격권의 연장으로 봅니다. 그래서 저작권의 영구적 양도행위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점적 사용권 부여 역시 엄격한 조건을 따져서 부여하도록 하고 있죠. 프랑스에는 보상청구권에 대한 규정도 있습니다. 독점적 사용권을 부여받으면서 지급한 금액보다 발생한 수익이 7/12, 약 58.3% 이상의 격차가 생기면 불공정 계약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지급하고 A라는 작품의 독점적 사용권을 얻은 기업이 수익을 160만원 발생시켰다면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본다는 거죠. 사업자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7/12로 제한하는 아주 엄격한 규정입니다. 이걸 레시온(Lésion)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걸 증명할 책임도 업체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산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았거나, 속이려고 했다가 들통나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당연하죠, 이건 사기나 횡령, 배임에 해당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방식의 저작권 이용 허락 계약을 ‘채권적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 저작권이라는 채권을 받아서 운용하는 것으로 사업을 한다고 보는 셈입니다.
* 만약 지금 시스템의 헛점을 노리는 곳이 있다면
<검정고무신>, <구름빵>, <그리스 로마 신화> 모두 출판사들이 계약으로 작가들을 곤경에 빠뜨린 경우입니다. 이들 출판사들 모두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소속인데, 출협에서는 <구름빵>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저작권법 개정을 두고 ‘개악’이라며 “무책임한 추가보상청구권”이라고 맹비난(링크)하기도 했습니다. 비단 오래전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1년 5월만 해도 <한국이 싫어서> 등으로 유명한 장강명 작가가 소설집을 펴낼 때 계약금을 책이 출간 된 이후에야 지급했고, 작가에게 알리지 않고 오디오북을 제작, 판매하는가 하면 연 2회에 걸쳐 저자에게 판매내역을 보고하고 30일 이내 인세를 지급하기로 한 계약도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강명 작가는 "내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나조차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이런 계약을 ‘관행’이라고 해 오던 출판계와, 그 ‘관행’을 여전히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들이 있을 겁니다.
특히 IP확장이 중요해진 시대인 만큼, 웹툰계에도 사업권을 싼 값에 확보하고자 하는 곳들이 있을 겁니다. 국가의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듯, 창작계의 힘은 창작자에게서 나옵니다. 웹툰계의 IP 비즈니스가 망가지기 시작한다면, 창작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시점일 겁니다.
작가는 작품을 찍어내는 틀이 아니고, 삶을 바탕으로 작품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정한 보상은 창작자들에게도 동기부여가 되고, 다음, 또 다음을 약속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건 일정 부분 ‘내 삶에 대한 긍정’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작가의 삶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제, 창작자들이 힘을 모아서 <검정고무신>의 비극을 막아야 합니다. 계약서를 검토받으려고 하면 곤란하다고 하거나, 정산에 대한 조항이 없다거나, 사실상 양도를 유도하는 계약 등 이런 빈틈을 찾아서 파고들려는 사업자가 있다면, 웹툰인사이트에 제보를 해 주세요.
다시한번 삼가 故 이우영 작가의 명복을 빕니다. 에디터는, 그리고 웹툰인사이트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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